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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 아라비아의 로렌스 1962

s-_-s 2017. 11. 21. 22:34

 

 

 

 

 

 

 

 

 

 

 

 

 

 

 

 

 

 

1962년작 러닝타임 무려 227분.

명성은 익히 들어왔지만 극장에서는 처음 보는 영화라

더욱 기대가 컸다

 

오래된 명화들의 평균 런닝타임이 3~4시간인것을 보면

예전의 감독들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찍었던것 같다

 

요즘은 관객의 인내심과 극장수입의 상영시간을

고려해서인지 대개 2시간 내외인 영화가 대부분이다

 

모험을 즐기고 빛나는 용기와 지혜를 가진 청년의

거침없는 질주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강대국들의 권력다툼속에서 개인의

이상과 노력이 얼마나 헛된것인지를 보여주는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막과 황량한 들판에서의 모질고도

아름다운 장면들이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명작이다

 

너무길어서 필름을 갈아끼우는지 인터미션 10여분,

후반부는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NAVER 지식백과 검색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2052749&cid=42621&categoryId=44419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아랍민족의 독립에 적극 참여했던 영국군 장교 T. E. 로렌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데이비드 린 감독이 연출한 작품.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아랍의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한 로렌스의 일화를 그의 자서전인 〈지혜의 일곱 기둥〉(The Seven Pillars of Wisdom)을 토대로 극화했다. 광활한 사막의 풍광을 효과적으로 구현한 70mm 와이드 스크린은 영화사에 남는 명장면으로 기록되고 있다. 1963년 아카데미 7개 부문 수상작.

 

제작연도 1962

감독 데이비드 린

출연 피터 오툴, 알렉 기네스, 앤서니 퀸, 잭 호킨스, 호세 페레, 오마 샤리프

 

시놉시스

영화는 T. E. 로렌스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뒤,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언급한 이후 그의 모험을 회상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1916년, 영국 정보국 소속 장교 로렌스는 아라비아에 정통하다는 이유로, 아랍 부족의 지원을 받아오라는 육군정보부의 명령을 받고 아랍 지역으로 파견된다.

 

이집트의 카이로를 출발하여 수에즈 운하를 건너는 도중 그는 알리 족장과 만난다. 로렌스는 우물물을 마셨다는 이유로 죄 없는 베두인족 안내인을 총살하는 알리 족장의 비정한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파이잘 왕자는 사막을 지배하는 부족의 지도자이자 독립군 지휘자이다.

 

로렌스는 자신의 상관인 브라이튼 대령의 의견과 달리, 수에즈 운하의 주요 통로인 아카바를 습격할 것을 제안한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파이잘 왕자는 자신의 부하를 내어주고, 알리 족장과 함께 떠날 것을 허락한다.

 

죽음의 사막 횡단 도중, 로렌스는 길을 잃고 뒤처진 부하 자심을 구하기 위해 일행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영웅심을 발휘한다.

 

사막에서 돌아온 뒤 로렌스는 알리의 부족과 라이벌인 하위탓 부족의 족장 아우다를 꾀어내 아카바 습격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어낸다.

 

그는 아랍 독립에 일조한 공로로 아랍민족으로부터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웅적인 칭호를 얻으며 선지자적인 위치에 오른다. 아랍 전사들을 이끌고 터키군과 싸우던 그는 남의 우물물을 마신 병사에게 총살을 하고, 확인사살까지 수차례 하는 잔인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지도자임을 확고히 한다.

 

선지자라는 확신에 찬 그의 행동은 점점 과장되어간다. 그러던 중 터키군에 잡혀 성적 고문을 당한 그는, 자신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고, 인종이 다른 아랍인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걸 여실히 절감하게 된다. 영국 정부의 소환을 받고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아랍민족연합회의를 이룩할 것을 꿈꾸며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아라비아 사막은 열강의 지도자들로 인해 정치적 타결점을 찾아 판세는 뒤바뀐 상태다. 믿었던 파이잘 왕자마저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난 뒤, 로렌스는 고문직을 사임한다. 몇년 뒤 고향에서 그는 오토바이 사고로 죽는다.

 

작품해설

1. 영화적 특징과 주제

 

데이비드 린 감독이 연출한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영국 장교 T. E. 로렌스의 영웅적 면모를 그의 일대기를 통해 조명한 작품이다. 상영시간 216분, 70mm 와이드 스크린 화면에 펼쳐지는 광활한 사막의 비주얼을 스크린에 구현한 스펙터클 대작이다.

촬영감독 프레디 영의 압도적 비주얼의 사막 장면을 배경으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듣는 모리스 자르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총제작비 2천만달러 이상, 촬영 기간만 2년 이상이 걸렸으며, 뜨거운 사막 촬영에 지쳐 중간에 두달간 촬영 휴식시간을 가졌을 정도로 지난한 시간에 거쳐 완성된 작품이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이미 미얀마 철도 건설을 소재로 한 〈콰이강의 다리〉(1957)로 엄청난 수익을 거둔 제작자 샘 스피겔과 데이비드 린 감독이 다시 한번 의기투합하여 만든 작품으로, T. E. 로렌스의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을 바탕으로 〈사계절의 사나이〉 〈닥터 지바고〉로 유명한 로버트 볼트가 각본을 집필했다.

자서전은 아라비아의 사막에서 활보하던 로렌스 자신의 내면의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영화는 수에즈 운하의 지배권 쟁탈을 두고 영국군과 터키군이 대치한 상황에서 아랍부족을 연합하여 그들을 승리로 이끈 로렌스의 일대기를 그의 죽음을 시작으로 회고하는 방식으로 기록한다.

 

일반적인 일대기 작품과 달리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로렌스를 전적으로 영웅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랍연합의 실패로 끝나는 과정에서, 결국 아랍인이 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체감하면서 정신 분열에 시달리는 그의 복잡한 내면까지 심도 있게 파고든다.

특히 초반에 죽음을 무릅쓰고 구해준 하인 자심을 아랍인들의 법에 따라 무참하게 살해하는 장면은, 순수한 영혼이 격랑 속에서 파괴되는 지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덕분에 이 영화는 거대한 사막을 배경으로 한 압도적인 비주얼로 영화적 테크놀로지의 최절정을 보여주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기록하는 세심한 드라마의 완성도까지 놓치지 않았다는 평가를 얻었다.

피터 오툴, 오마 샤리프 등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작품이기도 한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을 비롯해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이후 데이비드 린은 〈닥터 지바고〉 〈라이언의 딸〉 〈인도로 가는 길〉 등을 연출하며 대작 전문 감독으로 불린다.

 

2. 촬영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놓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힘은 바로 70mm 대형 스크린 위에 펼쳐진 광활한 사막 촬영에 있다. 사막 위의 인물들을 왜소하게 만드는 극단적인 익스트림 롱숏과 이와 정반대인 인물의 클로즈업 숏을 교차함으로써 스펙터클한 사막의 전투와 로렌스의 내면을 화면으로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성취를 이룬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 살을 에는 차가운 밤공기, 모래, 바람 등 사막의 모든 요소들이 각자의 몫을 부여받은 이 영화의 배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태양을 향해 성냥에 불을 붙인 화면을 통한 장면 전환과 광활한 사막의 끝, 로렌스와 베두인족 안내인이 바라보는 가운데, 하나의 점처럼 시작하여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족장 알리(오마 샤리프)의 등장 신은 가장 극한대로 거리감을 증폭시킬 수 있는 장비인 파나비전의 500mm 망원 렌즈로 촬영했으며, 3분간의 롱테이크로 펼쳐진다. 인물의 등장 신 중 가장 아름답다는 찬사를 얻은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65mm 카메라 촬영, 많은 장비, 엄청난 제작비를 동원한 대작을 컨트롤한 건 촬영감독 프레디 영이었는데, 그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작업 이후 대작 전문 감독으로 통하는 데이비드 린 감독과 돈독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며, 〈닥터 지바고〉 〈라이언의 딸〉 등에 참여해, 아카데미 촬영상을 세번이나 수상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장장 2년간 요르단에서 진행된 사막 촬영은 악천후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뜨거운 사막의 태양 때문에 카메라를 식혀줄 냉각장치를 급조해 만들었고, 사막에서는 장비를 수레에 실어 나르는 육체적 고통도 수반됐다. 촬영에 필요한 물은 150마일 떨어진 근방에서 트럭으로 공수되었다. 규모도 대단해서 기차 장면의 촬영을 위해 2마일의 트랙을 설치했으며, 아카바 전투에는 450마리의 말, 150마리의 낙타가 동원됐다.

 

애초 사막 촬영의 고충을 고려해서 넉넉잡아 4개월간의 촬영기간을 예상했으나, 그칠 줄 모르고 촬영이 연장되어 최종 2년의 기간이 소요됐다. 촬영 중간, 제작자 샘 스피겔은 2주간의 휴식을 감행하고 촬영지를 물색했다. 결국 고된 요르단 촬영을 접고 스페인으로 촬영지를 옮겼다. 이 기간 동안 배우 앤서니 퀸, 앤서니 퀘일, 알렉 기네스, 오마 샤리프는 다른 영화를 촬영하고 왔다.

 

3. 실존인물 T. E. 로렌스

 

T. E. 로렌스,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1888~1935)는 아랍 민족운동의 원조자로 아랍인들에게 ‘아라비아의 로렌스’라 불린 영웅적인 인물이다. 영국 웨일스 트레마독 출생으로, 토마스 로버트 채프먼 경과 사랑에 빠진 하녀 사라 메이든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고고학자로 대학 시절 아랍어를 배우고 중동 역사를 공부했으며, 논문과 관련하여 중동 일대를 여행했고, 1차대전이 일어나자 곧 육군 정보 장교로 카이로에 파견되었다. 금발에 파란 눈, 영국 군인의 신분으로 아랍의 해방을 위해 헌신적으로 싸운 특이한 활동은 그의 낭만적이고 괴짜스러운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로렌스는 분열된 아랍군을 통합하는 데 앞장섰으며, 게릴라 활동을 진두지휘해, 아카바 기습 점령,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점령 등 혁혁한 공을 세우며 아랍민족의 영웅으로 추대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터키군의 포로가 되어 고문을 당하고 이후 정신 분열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특히 전쟁이 끝나고 열강의 아랍분할 통치가 가시화되면서 아랍민족을 위해 해왔던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크나큰 좌절을 겪게 된다. 제대 뒤 죄책감 때문에 이후 공군 일등병으로 입대하는 의외의 선택을 하기도 했다. 영웅으로 칭송받던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1935년 47살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는데, 이를 두고 사고사가 아닌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지 않은 데 대한 좌절로 인한 자살이 아니었을까 하는 해석도 있었다.

 

한편에서는 로렌스의 일대기를 역사 왜곡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요르단의 역사학자 슐레이만 무서는 저서 〈T. E. 로렌스 : 아랍의 관점〉(1966)을 통해 아랍 혁명은 한 영국군의 영웅적인 활약으로 이룩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아랍인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상세한 역사적 사실과 함께 설명했다.

이에 앞선 1955년 영국의 작가 리처드 알드링턴은 책 〈아라비아의 로렌스 : 전기적 질문〉에서 로렌스가 사기꾼이었으며 그의 공적이 부풀려졌다고 주장해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주장들은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결국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서구인들의 시선으로 아랍의 역사와 로렌스의 삶을 그려냈고 오리엔탈리즘을 부추겼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4. 캐스팅

 

피터 오툴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출연하기 전까지 그다지 주목받는 배우가 아니었지만 이 작품으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큰 키와 훤칠한 외모를 가진 그는, 로렌스의 낭만적인 분위기, 내면의 갈등을 표현해내어 호평을 얻었으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실제 로렌스보다 키가 크고 잘생긴 그를 두고 데이비드 린과 작업을 해온 작가 노엘 코워드는 “만약 로렌스가 잘생겼었다면,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아니라 ‘아라비아의 플로렌스’라고 불렀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터 오툴이 캐스팅되기까지 많은 남자배우들이 로렌스 역에 거론됐다. 말론 브랜도나 앤서니 홉킨스도 그중 하나였다. 오툴이 된 데는 캐서린 헵번의 영향이 크다. 데이비드 린 감독이 앨버트 피니와 작업하려고 하자 헵번이 적극적으로 오툴을 추천하고 나선 것.

제작자 샘 스피겔은 피터 오툴의 캐스팅을 극구 반대하고,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밀었으나 클리프트가 알코올 중독 문제로 믿음을 주지 못하자 다른 배우를 물색하게 됐다.

욕심을 낸 클리프트가 데이비드 린 감독을 설득했으나 불발됐다. 촬영 일화로 낙타를 타는 장면을 위해 오툴은 촬영 기간 동안 베두인으로부터 훈련을 받았으며, 엉덩이에 하도 멍이 들어 고무 스펀지를 안장에 깔고 촬영을 했다고 한다.

 

※주요 등장인물

T. E. 로렌스(피터 오툴) : 아랍의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한 영국인 전쟁영웅.

파이잘 왕자(알렉 기네스) : 사막을 지배하는 부족의 지도자이자 독립군 지휘자.

알리(오마 샤리프) : 로렌스가 제안한 아카바 습격 작전을 위해 그와 함께 떠난다.

아우다(앤서니 퀸) : 알리의 부족과 라이벌인 하위탓 부족의 족장. 로렌스와 힘을 합쳐 아카바의 터키군을 무찌르는 데 성공한다.

※명장면 명대사

☆내 이름은 내 친구를 위한 것이오.☆

- 로렌스

알리 족장이 자신의 우물을 마셨다는 이유로 로렌스의 가이드를 죽이자 화가 난 로렌스가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한 말. 당신은 내 친구가 아니니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함. 로렌스는 이후 자심을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알리 족장이 가진 아랍민족의 근성을 자신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소. 어떤 이들에겐 운명이 정해진 게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것 같소.☆

- 로렌스

죽음의 사막 횡단 도중, 로렌스는 길을 잃고 뒤처진 부하 자심(I. S. 요하르)을 구하기 위해 일행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이때 로렌스가 결의에 차 했던 말로 그의 진취적인 캐릭터를 잘 드러내주며, 이 영화가 가진 테마와도 맞닿는 중요한 대사다.

 

☆젊은이들이 일으키는 전쟁은 생기가 있소. 용기와 희망이 느껴지지. 늙은이들은 평화를 원하지. 평화 속에는 늙은이들의 악덕이 숨어 있다오. 불신과 경계라는.☆

- 파이잘 왕자

영국군이 다마스커스를 점령한 뒤 파이잘 왕자와 영국군 지도자가 전후 처리를 의논하는 자리에서 파이잘이 옆에 있던 로렌스에게 한 말. 로렌스는 믿었던 파이잘 왕자마저 협상 테이블에서 열강들의 이권을 위해 일조하고 있는 걸 보고 지금까지 아랍의 독립을 위해 일해왔다고 믿었던 자신에 대해 심한 회의를 느낀다.

 

※수상

1963년 제35회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음악상, 녹음상(7개 부문 수상)

※음악

이 영화의 음악은 프랑스의 음악가 모리스 자르가 맡았다.

사막의 웅장함, 영웅의 복잡다단한 심리는 모리스 자르의 클래식 선율이 더해져 완벽하게 완성된다.

특히 로렌스가 영국군 본부에서 파이잘 왕자를 만나라는 명령을 듣고 성냥불을 끄면서, 곧바로 이어지는 사막의 전경이 펼쳐지는 웅장한 모습은 〈아라비아 로렌스〉의 명장면으로, 이때 모리스 자르의 메인 테마곡이 감흥을 더해준다.

원래 이 영화의 작곡가는 여럿이었고, 모리스 자르는 드라마틱한 스코어 작업에만 참여하는 걸로 고용되었었다.

그런데 다른 작곡가의 결과물을 보고 실망한 제작자 샘 스피겔과 데이비드 린 감독이 모리스 자르의 클래식 선율에 반해서 더 작업한 곡이 있는지 요청했고, 모리스 자르가 작업한 음악을 들은 그들은 자르야말로 이 영화의 음악을 도맡을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모리스 자르와 데이비드 린 감독의 인연은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시작으로 〈닥터 지바고〉 〈인도로 가는 길〉로 이어졌으며, 그는 이 세 작품 모두에서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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